함께한 16년!

병원 이모저모

정신분열병 극복경험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329회 작성일 07-07-18 11:17

본문


나의 정신분열병 극복 경험: 어떻게 치유되어졌는가
(정신치료를 통한 회복 과정)


이 정 길


I. 들어가며


- 정신치료와 환각 및 망상 시기, 그리고 무기력 상황에 대해


나는 1993년에 정신병이 발발했다. 그때부터 6년여에 걸쳐 입원을 열 두 번 정도 하면서 겪은 나의 고통을 먼저 살펴보자. 그러나 그 때 이후로 지금까지 이미 10여년이 지나서 그런 고통들이 기억이 잘나지 않는다. 또한 그 10여년이 지난 지금, 나는 정신병(정신분열병)이 크게 호전되어 일상생활에 전혀 지장을 받지 않는 치료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예전의 그 고통을 표현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먼저 정신분열병의 양성기라고 말할 수 있는 환시나 환청의 상황 속의 고통을 짧게나마 정리해보기로 하자. 정신병 혼란기의 와중에는 가장 힘든 것이 마음 속의 큰 위기의식과 일탈의 두려움이었다. 나의 혼란기에는 항상 종교적 망상이 주종을 이룬다. 종교망상이 그러하듯이 항상 무서운 신들이나 초월자들이 개입된다. 그래서 나는 이런 초월자들의 노예가 되어 이리저리 끌려 다니고 나의 죄책감이 발동하면서 언제 어떻게 재판을 받을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몸서리치며 허우적댔다. 몇 번의 자살 시도도 있을 만큼이다.
사실 이런 혼란기의 망상 경험은 이 글을 쓰는 최근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런 환청 망상은 정신치료를 받으면서 현실에서 사라졌다. 아마 일 년에 한 4, 5일 정도를 고생하곤 했다. 그리고 그 짧지만 큰 부담을 받는 그런 경험은 정신치료를 지속적으로 받으면서 점점 그 위협감이 줄어드는 경험을 한다. 환청 망상 속에서도 조금씩 견디기가 나아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망상 속의 초월자들을 대하는 나의 힘이 점점 강해지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이런 일이 있는가?’ 하는 재앙적 충격을 받고 헤맸으나, 점점 초월자들과 친해지기도 하면서 또한 그들의 항복을 받아내는 승리감을 맛보기도 했다. 진전되어가는 정신치료와 이런 환청 망상 경험의 연관성에 대해서 정리해 보는 것도 아주 유익한 일이기도 하겠지만 아마 더 긴 글이 필요할지 모른다. 재미있는 이해가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
다음엔 정신분열 음성시기 즉 정신병 만성기 속의 고통을 이야기해보자. 만성기에는 환청과 같은 혼란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고통의 정도는 그 혼란기에 못지 않은 것이다.
만성시기를 재현해보면 가장 힘든 고통이 아마 ‘한없는 절망과 한없는 불편함’이라고 볼 수 있다. 글 자체로 이 고통이 잘 표현되지 않는다. 만성기에는 항상 ‘절망의 와중이며 불편함의 극치’라고 보면 맞을 것이다. 순간순간 ‘이렇게 살다가 내가 어떤 비참한 종국을 맞을까’라는 느낌과 ‘너무 힘들다’라는 느낌이 가장 고통스런 것이리라.
정신치료가 풀어주고 소생시키는 점이 이 만성기의 고통에서 최상의 효과를 준다고 볼 수 있다. 사실 환청 망상기에는 약만 잘 먹어도 큰 효과를 경험할 수가 있다. 그러나 나의 만성기의 고통들은 꾸준한 정신치료가 아니었으면 소생이 안됐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만성기에는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되는 아무 해결이 안보이는 캄캄한 장막’이라고 보면 맞을 것이다. 정신치료는 이런 고립무원 상태의 나 자신을 소생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만성기에서 정신치료를 통하여 어떤 식으로 이러한 소생의 힘을 받았는지 그 치유인자를 정리해보자.


II. 본문으로


1. 치료자와의 경험을 통하여: 치료자의 자신감


나는 수년에 걸쳐 열 두번이나 대학병원 정신과의 정신병동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였다. 12 번째 입원 후 퇴원할 즈음에 당시 담당의사였던 서 선생님으로부터 처음으로 정신치료를 권유 받고 허찬희 선생님에게 의뢰되어 정신치료를 받기 시작하였다.
내가 생각하기에 정신치료에서 최초의 치유인자는 무엇보다도 치료자와의 동일시라고 볼 수 있다. 즉 나 앞에 있는 치료자의 자신감이 환자인 나 자신에게 이입이 되면서 가슴 답답함이 한결 풀리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그토록 절망감만 주던 정신병이 치료자의 신뢰감을 주는 치료적 관계에서 ‘이제 나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스며들어온 것이다. 나의 주치의는 나의 혼란된 마음과 정신을 조금씩 선명하게 정리해주는 느낌을 받곤 했다. 치료자가 ‘의사소통’이나 ‘매치’라는 말에 강조를 하면서 그런 ‘소통되는 대화’를 경험할 때 마음이 조금씩 안도감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아 이런 소통의 느낌이 바로 치료구나’ 그리고 ‘치료는 이렇게 되는구나’ 라는 치유현장감으로부터 희망을 품게 되었다.
치료자가 나 자신으로 스며들어 그 치료자로 사는 느낌에 빠져 살 때 큰 희망을 보게 되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치료자는 단지 환자인 나와의 동감을 주는 상호대화에만 머물지 않고 대화를 이끌어가면서 완벽하게 나의 동감을 이끌어 내는 힘도 지닌 것 같았다. 이때 나의 주치의는 나의 잦은 저항감과 함께 하면서도 인생 선배로서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경험하도록 이끌고 나가는 면이 너무도 신기하기도 했다.


2. 의존심: 심적 고통의 근원


의존심이라는 문제 제기는 주치의 선생님에 의해 정신치료 초기에 강력하게 대두되어 아마 내 삶의 끝까지 숙제가 될 만한 것이었다. 선생님에 의한 “그것도 의존심이야”라는 반복적 지적은 치료자에 대한 분노심과 함께 힘들게 이해해야 하는 것이었다. 정신병에 걸린 불쌍한 나를 ‘의지하려는 마음으로 가득찬 사람’으로 받아들이기에 너무 힘들었다. 그러나 이런 의존심의 자각과정은 병의 치료를 ‘내 마음을 보게 하는 습관(觀)’으로 몰고 가는데 큰 역할을 했다.
여기서 아직도 당황스러운 점은 의존심을 자각하면 할수록 의존심에 더 많이 더 깊게 지배된 나 자신을 보게 되고 그런 가중된 의존적 마음을 보아 가니 지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선생님은 ‘모든 것에 의존되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의존심을 보는 행위에 대해서도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는 궤변이 통하는 것이 아닌가를 의심해보기도 한다. 나는 아직도 모르는 것이 참 많다. 그러나 그냥 집착 없는 삶에 다름아닌 것이리라. 집착 없는 삶이라는 것도 알기가 참 어려웠다. 그것은 자연스럽지 않은 욕심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리라. 할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욕심이 아니기에 집착도 아닌 것이다. 마음이 편한 노동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집착이 아니다. 반대로 불편한 마음은 찰나에 있으면서도 집착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편한 마음은 누리려 하면 벌써 불편한 집착이 된다. 편한 마음은 자연스런 자기발현이라고 보면 맞다고 본다.
그러나 그런 집착 속의 의존심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여기면서 고통 속에 있기도 하지만 내려 놓을 수 있는 의존심을 포기해 나가면서 얻을 수 있는 해방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근래에 와서 신과 부처나 성인들의 존재들의 검열을 의식하면서 의존되어 위축되는 마음을 과감히 내버리면서 얻는 자유로움은 아주 의미있는 것이었다. 환청에도 이 의존심만 극복하면 그것이 없어지는 것임을 확인하는 과정에 있다. 의존심의 포기는 정신병의 충분한 치유인자가 되는 셈이다.


3. ‘나’에 대한 탐구


정신치료를 가슴을 열고 한껏 받아들이게 된 것은 아마 ‘나’에 대한 탐구였다. 이런 접근이 없었다면 나는 정신치료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불교에 빠져있던 나에게 ‘나의 마음을 그저 바라보는 것(觀)’은 무엇보다 치료를 열심히 하게끔 해주었다.
‘나’에 대한 탐구는 무엇보다도 만성기의 정신병 속에서 너무나 쉽게 치료의 과정 속에 들어가게끔 단초를 제공하였다. 자기마음 탐구 자체가 이미 치유를 내포하고 있었다. ‘아! 내가 그런 마음의 습관을 지니고 있구나’ 라는 자각이 이미 ‘그러면 그런 습관을 줄이기 위해 어떻게 해야 되지’로 연결시키고 그러는 순간에 마음은 ‘의욕’의 상태로 들어간다. 그 다음은 마음이 저절로 가속력을 받아서 치유를 진행시키는 것이다.
주치의 선생님이 관여하시는 학술대회에 참여하여 많은 경험을 하기도 하였다. 주치의 선생님은 치료자와 환자의 구별이 없었다. 좋은 학술 모임이 있으면 내가 참여하여 경험해보도록 적극 권장하신다. 나는 정신치료 과정에서 나의 주된 ‘정서적 문제(핵심감정)’와 ‘의존심’의 탐구과정은 치료를 진행시키는데 큰 동기를 부여해준 것이다. 학술대회에서 소암 선생님은 핵심감정 그것만 해결하면 다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런 치료방식은 참 단순하기도 하면서 오묘한 맛이 있어서 단번에 절망감에서 희망으로 마음을 움직이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나의 핵심감정은 주치의 선생님과 치료과정에서 깨달은 바, ‘홀로 내팽개쳐진 느낌’인 것이다. 나는 처음에는 이런 감정의 존재감을 잘 못 느껴 자꾸 다른 심리를 찾아 헤매었다. 최근 ISPS ( 국제 정신분열병 및 기타 정신병 심리적 치료학회) 한국 학술대회에 참가하여 그곳의 소암 선생님을 통해서 이제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그 핵심감정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 때 만족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제 더 이상 방황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그런 ‘혼자alone'에 떨어지면서 겁을 집어 먹는다. 그리고 이 때 모든 비생산적이고 비이성적인 행동에 사로잡힌다. 무엇보다 혼비백산으로 혼란에 빠져 절망적인 몸부림을 하게 된다. 이미 절망한 채로 가망없는 몸부림이다. 이후에 울분이 오고, 이 울분을 해결할 길이 없어서 환청이나 침대를 찾게 되는 것이다.
나는 아직 ‘혼자alone'을 해결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토록 힘들게 찾아 낸 그 핵심감정은 절망적일 때에 ’아, 이런 것이 바로 내 병이구나,‘ ’어쩌면 내 상황 자체가 그런 혼자alone는 아니구나,‘ 또 ’그러니 이 절망감을 주는 감정은 단지 감정일 뿐이다‘ 라는 사실을 자각하면서 나는 숨을 고를 수가 있었다. 그리고 결국 이 ’혼자alone'를 치유하는 길은 주치의 선생님이 그토록 강조하는 의존심을 줄이는 것이었다. 의존심을 줄이면 나의 병적인 감정은 줄어들고 생산적이고 꾸준하게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서야 힘이 좀 생긴 것 같다. 나는 ‘아무 것에도 잘 보이려 하지 않기’에 도전하고 싶어졌다. 의존심에서 해방을 말하는 것이다. 특히 어떠한 검열이나 심의 같은 데에 의존하고 싶지 않다. 즉 어떠한 종교 교리나 학문적 이론과 사상 그리고 도덕과 윤리 같은 것에 검열을 받고 싶지 않다. 그런 귀신과 같은 것들에 내가 잘 보이고 싶지 않다.
내가 원하는 어떤 생각이나 행위에 그 무슨 검열이 나에게 떠오르면 그것은 모두 단지 나를 가로막으려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들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 모든 검열은 나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남들에게 해당되는 것들이다. 나는 그런 남들의 것들에 좌우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남들의 것들에 내가 참조는 할지언정 지배는 절대 안 받으리라.
여기에 나 자신의 규칙이 있다. 해방엔 ‘나 혼자’가 중요하지 어떤 이유에서라도 ‘다른 사람’을 이용하지 않는 것이다. 폭력도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것이고, 그리고 무시도 남을 이용하는 것이다. 특히 남들에게 원하는 공짜 심리도 남들에 의존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남는 것은 내가 ‘공짜로 원하거나 직접 관계되지 않은 분노’로부터 남들에게 의지하려는 마음과 감정 즉 외로움, 미련, 기대감 같은 것들을 모두 병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단지 남는 것은 상호 대등 공존과 채무 없음을 추구해나갈 것이다. 주치의 선생님이 말씀하신 사람과의 관계가 서로 주고받는 거래를 넘어서서 ‘소통 흐름’으로 나아가 남들의 보는 ‘나’로 인한 모든 부담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되어 보고 싶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의존을 꿈꾸기에 이런 ‘흐름관계’가 현실적으로 어렵고 나 신 역시 의존심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 혼자가 되는 것을 힘들어하고 남들에게 사랑받고 싶어하고 남들을 이겨보려는 나의 마음자리를 항상 체크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일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서 건강한 대인교류를 하고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살아봐야겠다.


4. 본격적인 자기 이해와 자기 확신


이런 핵심감정과 의존심을 탐구하면서 나의 ‘혼자alone'을 중심으로 하여 좌우 안팎으로 그 파생물들을 연결시켜 이해해나가는 이해력이 증진되었다. 그리고 그 이해 행위는 점점 나의 확신을 주는 것으로 깊어져 가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두려움은 ‘혼자alone'라는 감정에 지배되어 생기는 것이고 그 치료방법은 의존심을 박차고 자립해나가는 용기에서 줄어드는 것이었다. 또 내가 서둘러서 일을 하면서 그르치는 것은 또한 놀람과 두려움에 지배되어 있고 그 중심엔 ’혼자라는 느낌‘이 있었다. 또 내가 여유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유를 즐기지 못하고 걱정과 근심에 사로잡혀 사는 것도 모두 ’혼자‘에서 기인된다. 자신감 없는 나의 태도도 혼자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에 있는 것이다.
이런 등등의 자기에 대한 깨달음은 무엇보다 할 일을 제대로 하는 데에 참 긴요한 것이었다. 무엇이라도 덜 겁먹고 덜 집착하고 덜 신경쓰면서 하는 일이 지금의 경제생활의 작은 성공을 이루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중요한 것은 자기이해가 자기확신에 이르는 데에 도달해야 하는 것이다. 확신감이 없는 이해는 가면에 불과하고 자기 병 치료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기이해는 확신감으로 자기에게 이해되는 것이어야 한다.


5. 엄마로부터 파생된 정신병적 증후에 대한 이해


나의 핵심감정을 더욱 깊게 들여다 보면 그것이 결국 나의 엄마와 관계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엄마로부터 나의 모든 정신병적 증후가 생겨난 것임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내 뒤에 없는(든든한 배경이 되어주지 못한) 엄마는 '나'를 키우지 못했다. '나'는 약했고 두려움이 많았다. 그리고 세상이 너무 극과 극이었다. 너무 두렵거나 너무 멋져 보였다. 모두 과잉 의존심을 배태시키는 ‘엄마의 공백’으로 인한 것이었다. 의존심이 너무 강해서 세상이 무섭다. 세상이란 게 별 것도 아닌데. 나의 환청에서의 배척감도 바로 이 때의 '엄마 없는 나'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나는 나를 성취하는 기쁨으로 살아야 했다. 그러나 반대로 나는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하인으로 살고 말았다. 엄마는 나를 '혼자'로 방치했다. 나는 남에게 짓눌려 너무 힘들어 했다.
엄마는 급기야 초등 6학년 때 위암에 걸렸다. 거의 3 년을 필사적으로 허우적대며 살았다. 나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엄마가 불쌍하게 생각했다. 죽는다니... 그렇게 힘이 들어 했던 우리 엄마... 멋진 엄마들이 참 많이 있었는데 우리 엄마는 너무도 불쌍한 사람이었다. 나의 애인은 커녕 나의 울분을 가져다주는 엄마였다. 나도 정말 불쌍한데... 엄마까지도 저렇게 불쌍하니... 엄마는 뻣뻣하고 싸늘한 주검으로 내 눈 앞에 나타났다. 난 그 죽은 엄마를 잊을 수가 없다.
너무 밉다. 엄마는 내 뒤를 보호해주지는 못할 망정 그렇게 초라하고 불쌍한 주검을 보여 주다니... 숨이 막힐 것 같이 밉다. 그러나 나의 교육은 '엄마를 존경하라'는 말들이었고 '엄마를 미워하라'는 말은 없었다. 미운데 미워할 엄두도 못내게 한 우리 엄마. 나의 병의 기원이다. 죽도록 미운데...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운데... 나는 그 미움을 이제껏 몰라 주었다. 나는 분노를 감추었다. 그런 엄마에 대한 분노를 어떻게 생각하기조차 할 수 있나? 나는 미움과 분노를 마음 속에서 얼음처럼 결빙시켜 두었다.
그렇게 나 자신을 내가 몰라주고 그런 나를 살려주지를 못했기에 그 '분노의 나'는 나를 비웃었다. 남들에게서 그런 비웃음을 봤고 환청 속에서 그런 비웃음을 봤다. 남들은 어릴적나를 물을 많이 마신다고 '물장군'이라고 무시하고 비웃는 것이었다. 사실 그런 비웃음은 별것도 아닌 놀이에 불과했는데.
나는 지금이라도 그 '분노의 나'를 용기있게 인정할 것이다. 정신병의 실체인 그 활활 타오르는 살아있는 그 '엄마에 대한 분노'를 인정할 것이다. 사실 이런 엄마에 대한 분노를 인정하면 이 세상에 분노하지 못할 존재란 없다. 나는 모든 존재들에게 분노할 수 있다. 혼자서. 혼자서 분노를 맞이하지 않으면 의존심으로 인한 환청으로 나타나기 쉽기 때문이다.


III. 마무리하며


- 인정되는 마음의 자유연상-해방으로 가는 길


이렇게 엄마에 대한 분노를 마음껏 인정하면서부터 나는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부정적 감정들을 인정하고 소화할 수 있게 되기에 이르렀다. 이제 나는 마음속에서 해방감을 느끼고 모든 검열을 이겨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지니게 되었다. 이런 해방감이 바로 정신치료였던 것이다. 자유연상으로 모든 나의 마음을 인정할 수가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해방감을 벗삼아 하는 모든 일들이 그렇게 크게 위험하지 않다는 확신이 들기도 한다. 물론 겁이 날 때도 있지만 정말 그런대로 살만하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런 해방감이 오히려 더욱 조심하고 자제하는 힘을 내게끔 도와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요즘은 주치의 선생님께 예법의 긍정적인 힘을 받아들이기도 한다. 나는 이 점이 가장 약하다. 유교적 예법을 가장 거추장스럽게 생각하며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왔던 것이다. 자유를 중시하는 나의 불교적 감수성에서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그런 예법은 나의 내면적 자연스런 자유를 보장해주고 동시에 외적인 생활에서도 큰 위험 없는 그런 진정한 자유를 보장해줄 거라는 생각도 해본다. 지금은 아직 잘 안되지만 힘이 닿는데 까지 받아들여 나갈 것이다.


- 할 일을 큰 부담 없이 할 수 있다.


정신치료가 나에게 현실적이고 경제적인 효과를 준 것이 있다면 ‘할 일을 부담없이 해나갈 수 있는 것’이리라. 물론 아직도 난 내 할 일을 제대로 꾸준히 하지 못한다. 그러나 8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른 것은 할 일을 억지로 힘들여 하는 것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정신분열 만성기에도 가장 힘든 것 중 하나가 이런 나의 할 일을 앞에 두고 남에게 미루고 게을리 대충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 때는 그런 게으름 때문에 주위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존재로 다가가지 못했고 오히려 가족들이나 남들에게 핀잔을 듣고 괴로워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 때는 왜 그렇게 할 일이 눈에 띄지 않았는지... 그리고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을 두고 왜 그렇게 하기 싫었는지...
요즈음 생각해 보면 먼저 마음의 잡념이 부담으로 가득차 있어서 세상 일에 다가가지 못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또한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의미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너무 큰 욕심 속에 그런 일에 대한 가치를 깨닫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정신치료를 통해서 잡념이 잘 정리되어 나가면서 무거운 마음을 내려 놓고, 살아갈 일에 손이 갈 수 있었다는 것과 이렇게 손이 가 해내는 일들에서 보람이 돌아오는 것이 순환적 작용을 이루어 치료가 배가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도 제대로 ‘해야 하는 일’보다 비현실적인 ‘하고 싶은 일’에 사로잡혀 있어서 발전에 장애가 되고 있다. 정신치료가 잘 진행될 때에 결국 ‘할 수 있는 해야 할 일’에 꾸준히 손을 댈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끝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